느림 독서

책 한 권을 30일간 읽는 느림 독서가 준 깊은 변화

woogi0777 2025. 6. 27. 23:11

우리는 책을 많이 읽어야 지적 성장이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한 달에 몇 권', '1년에 100권' 같은 목표가 어느 순간 당연해졌고, 나 또한 그 흐름 속에서 빠르게 읽는 법을 고민해왔다. 하지만 어느 날, 다독의 흔적만 남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머릿속을 들여다보다가 문득 의문이 들었다. “나는 정말 책을 읽은 걸까, 아니면 넘긴 걸까?” 그 질문이 내 독서 방식을 근본부터 흔들기 시작했다. 그 후 나는 실험을 하나 해보기로 했다. 책 한 권을 30일간, 하루에 몇 페이지만 천천히 읽어보는 느림 독서. 단순한 독서법의 변화였지만, 그 한 달은 내가 책을 '진짜로' 읽고, 사유하고, 연결하며 살아본 시간이었다. 그 경험은 나의 독서 태도뿐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시선까지 바꿔놓았다.

책 한 권 30일간 천천히 느림 독서가 준 변화들

 

페이지 수보다 ‘머무는 시간’이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30일 동안 한 권의 책을 읽는다는 건, 처음엔 막막하게 들렸다. 보통은 이틀, 길어야 삼일 만에 끝내던 분량이었다. 나는 하루 10페이지 남짓을 정해 놓고, 단 한 줄이라도 무의미하게 넘기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시작했다. 처음 며칠은 조급함이 앞섰다. 빨리 다음 장면이 궁금했고, 페이지를 넘기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하지만 그 욕망을 눌러가며 문장을 곱씹고, 메모를 하고, 낯선 단어는 사전에서 찾아가며 읽자 어느새 책 속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났다. 예전에는 책을 '통과'했다면, 이제는 책 안에 '머물렀다'. 페이지 수가 줄어든 대신, 그 문장들과 나 사이의 거리는 가까워졌고, 책이 내 마음에 ‘깊이 박히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느림 독서가 가르쳐준 첫 번째 변화는, 독서는 속도가 아닌 머무는 깊이라는 사실이었다.

 

문장이 마음을 흔들고,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속독을 할 때는 문장이 정보를 전달하는 도구에 불과했다. 하지만 느림 독서를 하면서 문장이 '사유의 단초'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하루에 단 한 문장이라도 마음을 건드리는 구절을 만나면, 그 문장을 가지고 하루 종일 곱씹었다. 왜 이 말이 지금의 나에게 울림이 되었을까? 내가 이 문장에 반응한 이유는 무엇일까? 책을 읽는 동안 나 자신에게 묻게 되었고, 그 질문은 나의 내면을 깊게 파고들었다. 예를 들어, 관계에 대한 문장을 읽던 날은 내가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었는지를 돌아보게 되었고, ‘무심코’ 넘겼던 과거의 행동을 성찰하게 만들었다. 문장이 정보가 아닌 거울이 되어 나를 비추었고, 느림 독서는 그 문장을 질문과 성찰의 도구로 바꿔주었다. 그동안 나는 책을 통해 많은 지식을 ‘얻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질문을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단어 하나의 무게와 감정의 결이 다르게 다가왔다 

 

속독의 습관을 버리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건 단어와 문장에 대한 감각이었다. 예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단어 하나가, 느림 독서에서는 무겁게 다가왔다. 작가가 선택한 어휘, 문장 배치, 문장과 문장 사이의 여백이 모두 의미 있게 느껴졌다. 어떤 날은 쉼표 하나에 멈춰 서기도 했고, 같은 문장을 여러 번 소리 내어 읽으면서 감정을 음미했다. 그렇게 읽다 보면, 글의 표면뿐 아니라 문장 뒤에 숨은 감정과 리듬까지 느껴지기 시작했다. 문학을 읽을 때는 인물의 감정선에 더 민감해졌고, 에세이를 읽을 때는 저자의 목소리가 더 분명히 들려왔다. 느림 독서는 단순히 정보를 이해하는 독서를 넘어, 문장과 ‘공명’하는 독서였다. 그리고 그 공명은 내 감정의 민감도를 높여주었고, 나도 모르게 더 섬세한 인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책과 내가 대화를 시작했고, 삶의 리듬이 바뀌었다 

 

책을 30일간 천천히 읽는 동안, 나는 점점 책과 대화하는 법을 배워갔다. 단순히 읽고 넘기는 것이 아니라, 책 속 문장에 내 생각을 얹고, 삶과 연결지으며 '대화'를 나누는 경험이었다. 그 과정은 내 삶의 리듬마저 바꾸었다. 매일 아침, 조용한 공간에서 책을 펼치고, 한 줄 한 줄 천천히 읽는 시간은 명상 같았다. 외부 세계의 소음과 속도에서 벗어나, 나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단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나를 들여다보고 삶을 정돈하고 있었다. 하루 30분의 느림 독서 루틴은 단순한 독서 습관이 아닌, 삶을 회복하는 리추얼이 되었다. 느림 독서는 단지 책을 다르게 읽는 방식이 아니라, 나를 다르게 살아가게 만드는 방식이었다.

 

 

책을 천천히, 오래 읽는 건 처음에는 비효율처럼 보였다. 하지만 30일간의 느림 독서가 끝난 뒤, 나는 완전히 다른 시선과 감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 한 권은 단순한 지식의 보고가 아니라, 내 삶을 돌아보고 나를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속도보다 깊이, 양보다 연결감, 그것이 느림 독서가 알려준 가장 중요한 진리였다. 더 많은 책을 읽는 것보다, 더 깊이 있게 한 권을 읽는 것이 내게 훨씬 더 많은 변화를 안겨주었다. 앞으로도 나는 그렇게 책을 읽을 것이다. 천천히, 그러나 깊게. 그리고 그 느림 속에서 또 하나의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