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읽는 독서는 나만의 언어를 찾는 시간이다

지금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말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인터넷 댓글, 메신저 알림, 빠르게 소비되는 짧은 영상과 자극적인 문장들. 온종일 정보를 읽고, 듣고, 또 말하지만 정작 ‘내 말’이 무엇인지 돌아볼 틈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말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우리는 자주 언어에 지친다. 누군가의 말에 휘둘리고, 때로는 내 말이 아닌 타인의 말투로 자신을 표현하기도 한다. 그럴 때 느리게 읽는 독서는 조용한 탈출구가 된다. 책 속에서 문장을 천천히 곱씹다 보면, 다른 사람의 말이 아닌 나만의 언어를 조금씩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외부로부터의 해방이며, 내면으로의 깊은 여행이다.

느림 독서 속에서 나를 닮은 언어를 발견하다

책을 느리게 읽는다는 것은 단어 하나에 오래 머무는 일이다. 어떤 문장은 쉽게 넘어가지 못하고 다시 읽게 되고, 어떤 구절은 이상하리만큼 마음에 오래 남는다. 그 순간 우리는 단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문장을 거울 삼아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는 셈이다. 느림 독서는 그런 식으로 우리에게 ‘나’를 보여준다. 나는 왜 이 문장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어떤 표현이 나를 울리는지를 생각하며, 언어를 통해 감정의 뿌리를 찾아간다. 그 과정에서 나는 점점 내가 어떤 말로 세상을 느끼고, 표현하고 싶은지 알아가게 된다. 그건 누군가 대신 써준 말이 아닌, 내 마음속에서부터 천천히 떠오른 말이다.

속도가 아닌 호흡으로 쓰는 말들

세상이 요구하는 말은 빠르고 단정하길 원한다. 짧고 정확한 문장, 명확한 결론, 감정을 절제한 표현. 하지만 우리의 진짜 마음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때로는 느릿하고, 모호하고,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존재한다. 느리게 읽는 독서를 통해 우리는 그런 감정의 언어를 소중히 여기게 된다. 작가들이 그려낸 복잡한 감정, 설명할 수 없는 여운, 서툰 진심들을 읽으며 우리도 그런 말하기를 허락받은 기분이 된다. 그렇게 느림 독서는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언어, 관계를 맺는 언어, 스스로를 위로하는 언어를 조심스럽게 다시 짓게 한다. 그것은 타인의 말에 맞춰가는 삶에서, 자신의 말로 살아가는 삶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다.

글쓰기 이전에 읽기로 닦는 말의 뿌리

글을 쓰고 싶은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좋은 글감이나 멋진 문장보다 ‘자신만의 언어’다. 그 언어는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수많은 문장을 지나며, 마음에 오래 남은 문장들을 가만히 붙잡으며 쌓인다. 느림 독서를 통해 우리는 언어의 층위를 천천히 체험한다. 이 말은 왜 따뜻하게 들리는지, 저 표현은 왜 불편하게 느껴지는지를 느끼며 내가 좋아하는 언어,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언어의 결을 익히는 시간이 된다. 그건 글쓰기의 바탕이 되고, 나아가 말하는 방식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까지 바꾸어 놓는다. 언어는 결국 삶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느림 독서를 통해 말에 귀 기울이고, 마음에 오래 남긴 말들을 품을 때 우리는 자연스레 자신만의 언어로 세상을 바라보고 써내려갈 수 있게 된다.

 

말은 삶의 흔적이다. 느리게 읽는다는 것은 그 흔적을 더듬으며 나만의 길을 찾는 일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말 속에서 자신을 잃을 수도 있고, 반대로 천천히 읽은 문장 속에서 자신을 되찾을 수도 있다. 느림 독서는 말의 무게를 다시 느끼게 하고, 표현의 본질에 다가가게 해준다. 그 속에서 우리는 자신만의 언어를 다듬고, 진짜 자신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세상의 빠른 말들 사이에서 흔들릴 때, 느리게 읽는 시간은 조용히 말한다. “그건 너의 말이 아니었잖아.” 그렇게 우리는 느림 독서를 통해 말의 바깥이 아닌, 말의 가장 깊은 중심에서 나를 찾는 법을 배워간다. 말에 휘둘리지 않고, 말에 갇히지 않으며, 내 안에서 나온 단어로 세상을 살아가는 용기를 키우는 시간. 느림 독서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깊은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