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 독서를 통해 삶에 오래 남는 책을 만나다

책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치고 책을 많이 읽지 않은 사람은 드물다. 나 역시 다독가에 가까웠고, 책장에서 책이 늘어날수록 뿌듯함도 느꼈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그 수많은 책들 중 내 삶에 정말 ‘남아 있는 책’은 몇 권이나 될까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분명 읽은 책은 많았는데, 누군가 “당신 인생의 책은 무엇인가요?”라고 물으면 한동안 침묵하게 되는 나를 발견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나는 책을 ‘통과’했지, 책과 ‘머무르지’ 않았다는 것을. 그런 나에게 변화를 준 건 ‘느림 독서’였다. 천천히 읽고, 생각하고, 느끼며 책과 관계를 맺기 시작하였고, 몇몇 책은 단순한 정보가 아닌 삶의 장면으로 기억되기 시작했다. 느림 독서는 책을 남기기 위한 방식이 아니라, 책이 삶에 오래 남도록 도와주는 유일한 방식이었다.

 

빨리 읽는 책은 잊히지만, 천천히 읽은 책은 남는다

 

과거의 나는 책을 빨리 읽는 것이 능력이라고 여겼다. ‘이 책, 하루 만에 끝냈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곤 했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 빠르게 파악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 그리고 분명히 나는 많은 책을 읽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읽은 책들이 기억에서 하나둘씩 사라졌다. 책 제목은 기억났지만, 그 안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어떤 문장에 멈췄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 책은 내 삶을 지나갔지만, 내 안에 머물지 않았다. 그러던 아느 날, 한 권의 책을 느리게 읽어보자는 결심을 했다. 하루에 10페이지씩, 천천히, 메모하며, 반복해서 문장을 읽었다. 처음엔 답답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문장이 내 안에 새겨지기 시작했다. 읽은 책이 아닌, 함께 걸어간 책이 되었다. 페이지를 덮은 후에도 떠오르는 문장이 있었고, 삶의 어떤 장면에서 문장이 나를 이끌었다. 느림 독서는 책을 나의 일부로 만드는 경험이었다.

 

느림 독서가 만들어준 ‘책과의 관계 맺기’

 

느림 독서를 하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책과의 관계 방식이었다. 예전에는 책을 정보의 저장소처럼 여겼고, 읽고 나면 정리하고 다음 책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이제는 책을 사람처럼 느끼기 시작했다. 작가의 말투를 느끼고, 문장 속 감정을 따라가고, 책과 대화를 나누는 듯한 경험이 생겼다. 어떤 날은 책을 덮고 한참을 멍하니 그 여운에 잠기기도 했고, 어떤 문장은 하루 종일 내 생각을 붙잡기도 했다. 책이 더 이상 ‘읽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 일상에 스며들고, 나의 언어와 감정과 연결되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느림 독서는 책을 ‘완독’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 맺는 행위’로 변화시켜 주었다. 그 관계는 시간과 함께 깊어졌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 책은 내 안에서 더 단단해졌다. 삶에 오래 남는 책은 한순간의 정보가 아니라, 느린 공감과 사유 속에서 탄생한 ‘정서적 기록’이었다.

 

삶에 남는 책은 ‘내용’이 아니라 ‘느낌’으로 기억된다

 

어떤 책은 내용을 잊어버렸는데도 여전히 마음속에 남아 있다. 문장 하나, 분위기 하나, 감정 하나가 뇌리에 깊게 박혀 있기 때문이다. 느림 독서를 하면서 깨달은 건, 책은 정보보다 ‘느낌’으로 더 오래 기억된다는 사실이었다. 작가가 책에서 말한 메시지보다, 내가 느낀 감정이 더 오래 남는다. 그리고 그 감정은 빠르게 읽어서는 결코 만날 수 없는 것이었다. 천천히, 여러 번, 깊이 있게 읽었을 때만 문장의 분위기와 감정이 마음에 들어왔다. 나는 이제 책을 읽을 때 감정을 기록한다. 어떤 문장에서 위로를 받았는지, 어떤 말에서 울컥했는지, 왜 그 문장이 나를 붙잡았는지를 짧게 써둔다. 시간이 지나 다시 꺼내 읽으면, 책 내용이 아니라 그 시절 내 마음이 먼저 떠오른다. 삶에 오래 남는 책은 줄거리가 아닌 감정의 흔적으로 기억된다. 느림 독서는 그 감정을 충분히 음미할 수 있는 유일한 독서법이었다.

 

나를 바꾼 책은 항상 ‘느리게’ 읽은 책이었다 

 

지금까지 수백 권의 책을 읽었지만, 나를 진짜로 바꾼 책은 손에 꼽는다. 그리고 그 책들은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느리게, 깊게, 반복해서 읽은 책들이었다는 점이다. 단지 읽는 데서 끝나지 않고, 삶에 연결하고, 실천하고, 감정을 새기면서 만난 책들이었다. 어떤 책은 내 가치관을 바꿔줬고, 어떤 책은 인간관계를 회복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어떤 문장은 지금도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내 기준이 되곤 한다. 그 모든 변화는 한 권을 천천히, 그리고 진심으로 읽은 결과였다. 요즘 사람들은 새로운 책을 끊임없이 찾지만, 나는 이제 오래 읽을 책을 고른다. 단 한 권이라도, 내 삶에 남을 책을 찾고 싶다. 책은 많이 읽을 필요 없다. 단지, 오래 남을 책을 만나면 된다. 그리고 그 책은 언제나 느림 독서를 통해 만날 수 있었다.

 

 

책을 읽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책과 ‘기억을 공유하는 경험’을 만드는 건 오직 느림 독서로만 가능하다. 삶에 오래 남는 책은 줄거리나 팁이 아니라, 내 안에 남은 감정과 질문과 여운이다. 그것은 천천히 읽고, 머무르고, 음미한 시간만이 만들어준다. 느림 독서를 하며 나는 단지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 책과 함께 살아낸 순간들을 쌓았다. 그 순간들이 모여 내 인생의 문장들이 되었고, 그 문장들이 지금의 나를 지탱해주고 있다.당신도 오래 남는 책을 만나고 싶은가? 그렇다면 단 하나의 방법을 권하고 싶다. 속도를 내려놓고, 한 문장씩 천천히, 천천히 읽어보라. 그 책은 반드시 당신 안에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