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간 천천히 읽은 책 한 권이 내 인생에 남았다

예전의 나는 책을 빨리 읽는 사람이 멋있다고 생각했다.
서점에서 책을 쌓아두고, 하루에 몇 페이지씩 쭉쭉 읽어 내려가며
‘한 달에 10권 읽기’ 같은 목표를 세우는 데 익숙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렇게 많은 책을 읽고도, 왜 나는 달라지지 않는 걸까?”
좋은 문장을 만나 감동했지만 그 감정은 금세 사라졌고,
책을 덮은 순간부터 머릿속은 다시 텅 빈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던 중, 한 권의 책을 ‘한 달 동안 천천히 읽어보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느린 독서가 내 사고를 바꾸고,
감정을 다루는 방식도 바꾸고, 삶을 바라보는 시선까지 바꾸어놓았다.
그 책은 더 이상 책이 아니라, 삶과 함께한 시간 그 자체였다.

 

처음으로 ‘느리게 읽기’를 실천하다 

 

그 책은 에세이도 아니었고, 자기계발서도 아니었다.
그저 우연히 읽게된, 인생과 관계에 대한 철학적 이야기들이 담긴 책이었다.
처음엔 ‘이 책을 30일간 나눠 읽는 건 너무 느린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게 해보자고 결심했다.
하루에 5~10쪽씩만 읽고, 중요한 문장은 필사하고, 느낀 점은 짧게라도 적어보자.
처음에는 참을성이 필요했지만, 점차 그 리듬이 마음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문장을 한 줄씩 음미하며 읽다 보니, 전에 보지 못했던 표현의 결, 작가의 의도, 단어의 호흡까지 느껴졌다.
무엇보다 감정이 따라왔다.
어떤 문장은 나를 울컥하게 만들었고,
어떤 페이지는 한참 동안 책장을 넘기지 못하게 했다.
처음으로 ‘읽는 속도’가 아니라 ‘머무는 시간’에 의미를 두게 되었고,
그 시간은 단순한 독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마주하는 치유의 시간이 되었다.

 

문장 하나가 삶의 태도를 바꾸었다

 

책을 읽는 내내 마음에 오래 남았던 문장이 있었다.
“사는 일은 결국, 매일 나를 다독이는 일이다.”
그 문장은 단순한 위로처럼 보였지만,
그날 이후 나는 나 자신을 대하는 태도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늘 ‘더 잘해야 해’, ‘더 빨라야 해’라는 말로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하지만 느림 독서를 하면서, 나는 처음으로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연습을 하게 되었다.
그 문장을 마음에 품고 지낸 며칠 동안,
나는 조금 더 조용히 말했고,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메모장에 써보았고,
매일 자기 전에는 그날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노트에 적었다.
책 속 문장은 단지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니라, 삶을 움직이는 계기가 되었고,
그 변화는 아주 작지만 확실했다.
하루하루 나의 태도가 달라졌고,
결국 내 삶의 속도, 감정, 관계가 조금씩 정돈되기 시작했다.
문장 하나가 나를 바꾸었다. 그것이 느림 독서가 가진 마법이었다.

 

책을 다 읽은 날,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30일이 지나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나는 뭔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걸 직감했다.
이전에는 책을 다 읽은 후 ‘다음 책’을 고민했지만,
이번에는 ‘이 책을 어떻게 더 오래 간직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 책은 단지 한 권의 책이 아니라, 30일 동안 나의 삶과 감정을 함께 걸어온 동반자였다.
그 안에는 내 사유, 내 감정, 나의 성장의 기록이 담겨 있었고,
그렇기에 쉽게 잊을 수 없는 책이 되었다.
나는 그 책을 덮은 이후에도 자주 다시 펼쳤고,
노트에 적은 문장과 메모를 종종 꺼내 읽으며 스스로를 다시 정돈했다.
그 책은 내 인생을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않았지만,
내 일상 속 수많은 장면에서 새로운 선택과 반응을 가능하게 만들어주었다.
한 권의 책이 이렇게 오래 남을 수 있다는 것,
그건 오직 ‘느리게 읽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빠르게 지나간 책은 사라지지만, 천천히 읽은 책은 남는다

 

우리는 너무 많은 책을 읽고, 너무 빨리 다음 책으로 넘어간다.
요약을 보고, 핵심만 뽑아내고, 밑줄 몇 개로 독서를 끝내버린다.
그런 책은 정보는 남기지만 감정은 남기지 못한다.
그러나 천천히 읽은 책은 다르다.
그 책은 내 삶에 들어와 잠시동안 멈춰 있고,
시간이 지나도 감정과 사유의 궤적을 남긴다.
나는 한 권의 책을 느리게 읽으면서,
‘책을 통해 변화된 삶’이라는 것이 정말 존재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경험했다.
그 후로 나는 더 이상 책을 빨리 읽지 않는다.
오히려 느리게 읽을 수 있는 책을 고른다.
한 권이지만 오래 머무는 책,
그런 책이 결국 나를 바꾸고, 오래 남고, 또 다른 삶을 열어주는 출발점이 된다.
그리고 그것은 다독으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경험이다.
내 인생에 남은 책은 ‘많이 읽은 책’이 아니라,
깊이 있게 천천히 읽은 단 한 권이었다.

 

 

한 달 동안 천천히 읽은 책 한 권은,
단지 글자를 따라간 시간이 아니라
나의 감정과 생각, 삶의 태도를 정돈한 시간이었다.
빠르게 지나가던 일상 속에서,
책 한 권이 내 삶을 멈춰 세우고, 바라보게 만들고, 조금씩 움직이게 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진짜 중요한 건, 내 삶에 남은 책이 있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그 책은 오직 느림 독서를 통해 만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