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는 책을 ‘얼마나 많이’ 읽었는지를 하나의 지표처럼 여긴다. SNS에는 ‘한 달에 10권 읽기’ 챌린지가 넘쳐나고, 서점가에는 속독법이나 초고속 독서 훈련에 대한 책들이 여전히 인기다. ‘정보는 빠르게, 독서는 효율적으로’라는 구호 아래, 책도 콘텐츠처럼 소비되고 있는 것이다. 나 역시 한동안 그 흐름 속에 있었다. 하루 한 권을 읽어보겠다며 요약 앱을 활용하고, 책을 ‘읽는다기보단 훑는’ 방식으로 처리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그 결과는 허무했다. 책은 쌓여갔지만, 마음에 남는 문장은 없었고, 지식은 늘었는지 몰라도 지혜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때 나는 질문을 던졌다. “나는 정말 책을 읽고 있었던 걸까?” 그리고 그 질문은 나를 ‘느림 독서’라는 세계로 이끌었다.
속독과 다독이 빠뜨리는 것들
속독과 다독이 무조건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정보의 숲에서 빠르게 길을 찾는 데에는 분명 유용하다. 문제는 이 방식이 책 읽기의 본질을 훼손할 수 있다는 점이다. 속독은 자칫 책을 요약본처럼 받아들이게 만들고, 다독은 ‘수량’이라는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우리는 책을 통해 지식을 넘어서 감정과 통찰을 얻어야 한다. 하지만 속독은 감정에 머물 틈을 주지 않고, 다독은 한 권의 깊이에 닿기 전에 이미 다음 책으로 시선을 옮긴다. 마치 꽃을 제대로 들여다보기도 전에 다음 꽃밭으로 가버리는 것과 같다. 결국 책이 남긴 것은 ‘읽었다는 사실’뿐이고, 삶은 조금도 변하지 않은 채 남는다. 이쯤에서 우리는 질문해봐야 한다. 책을 많이 읽는 것과, 책을 제대로 읽는 것 중 과연 무엇이 더 중요한가?
느림 독서, 한 권의 책과 진짜로 마주하는 시간
느림 독서는 속도보다 깊이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한 문장, 한 단락에 천천히 머무르고, 저자의 의도와 숨결을 따라가며 읽는 행위다. 처음엔 답답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느림 독서를 하며 ‘한 권을 오래도록 읽는 법’을 체득한 이후, 나는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감동을 경험했다. 예컨대, 자기계발서의 단순한 한 문장이 내 삶의 문제를 관통하는 통찰로 다가온 적이 있었다. 에세이 속 사소한 문장이 눈물 나도록 따뜻했던 순간도 있었다. 이건 빠르게 읽었다면 결코 느낄 수 없었던 감정들이다. 느림 독서는 책과의 진짜 대화를 가능하게 한다. 저자의 생각을 따라가며 때로는 동의하고, 때로는 반박하며, 독자 스스로의 세계를 넓히는 과정이다. 이 속도는 늦지만, 변화는 깊고 오래간다.
느림 독서가 삶에 미치는 실질적인 변화
느림 독서를 실천하면서 나에게 가장 크게 다가온 변화는 ‘삶의 리듬’이었다. 빠르게 흘러가던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추고, 생각하고, 정리하는 습관이 생겼다. 이전에는 독서가 정보를 흡수하는 행위였다면, 이제는 사유와 연결되는 시간으로 바뀌었다. 책을 읽다가 메모하고, 문장을 반복해 읽으며 나의 경험과 연결해보는 과정은 단지 독서력 향상을 넘어서 삶을 더 의식적으로 살아가게 만든다. 또한 느림 독서를 하면서 ‘한 권을 다 읽지 않아도 된다’는 자유도 얻었다. 때로는 서문에서 이미 충분한 배움을 얻기도 하고, 한 문장을 몇 날 며칠 곱씹기도 한다. 이 방식은 내 독서 습관뿐 아니라, 인간관계나 일상의 태도에도 영향을 주었다. 급하게 판단하지 않고,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며, 무엇이든 깊이 있는 태도로 접근하게 된 것이다.
다독보다 진정한 변화가 있는 독서를 위하여
우리는 책을 읽는 이유를 다시 정의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많이 읽는 것, 빠르게 끝내는 것, 남들보다 앞서가는 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책은 결국 우리 삶에 작지만 본질적인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 읽는 것이다. 느림 독서는 그런 변화를 가능하게 만들어 준다. 책을 통해 ‘이해하는 힘’, ‘공감하는 감성’, ‘사유하는 자세’를 갖게 되고, 그것은 나를 조금 더 단단하고 깊은 사람으로 이끌어준다. 물론 다독이나 속독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중심에 ‘느림’이라는 축이 잡혀 있을 때, 우리는 책 속에서 단지 정보가 아닌 인생을 발견하게 된다.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은 늘, 천천히 음미하며 읽었던 책이었다. 느림 독서는 그만큼 강력하다. 느려도 좋다. 오래 남고, 깊게 바뀌면 그것이 진짜 독서다.
속독과 다독이 독서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 읽은 책의 숫자가 늘어나는 기쁨보다 더 소중한 것은, 한 문장이 삶에 새겨지는 경험이다. 느림 독서는 단순한 독서 방식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이고, 생각을 깊게 만드는 훈련이다. 빠름에 익숙한 시대일수록, 느림이야말로 경쟁력이다. 한 권의 책을 천천히 읽고, 오래도록 곱씹고, 그 문장을 삶 속에 실천해 나갈 수 있다면, 우리는 독서를 통해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숫자가 아닌 방향, 속도가 아닌 깊이. 속독과 다독의 함정을 넘어선 느림 독서에는 분명히 그런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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